하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얼른 와요 사랑"
지난 밤, 많은 비가 왔다. 잠이 안올 때면 ASMR 이라는 수면 유도 음악(소리)을 듣는다. 많은 ASMR 중에서 나는 자주 '비 오는 소리'를 듣는다. 'asmr rain'이라고 검색하면 텐트 안에서 태풍을 맞이하는 무지막지한 빗 소리가 들린다. 적막한 가운데 내 머리를 채우는 빗소리가 가끔은 좋을 때도 있지만 나는 소박한 빗소리를 더 좋아한다. 창문을 때리는 빗 소리가 마치 장작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리드미컬하면서 반전있는 타악기 같기도 하다.
이 ASMR을 들으면 창문 안에서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며 따뜻한 바닐라 라떼(샷을 추가해야한다)를 한 잔 마시고 있는 것만 같다. 서늘한 피부를 안에서부터 따뜻하게 감싸안는 비 오는 날의 온도가 머리로 느껴진다.
지난 밤에는 비가 딱 적당히 왔다. 방 안에 누워 잠에 들기에 딱 적당했다. 조금 내려 빗소리가 안들리지도 않았고, 천둥과 함께 많이 내려 무섭지도 않았다. 딱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비가 왔다. 진정한 자연의 ASMR을 들으며 잠에 들 수 있었다. 비록 바닐라라떼를 마시러 갈 수 없는 새벽 3시 였지만, 창 밖의 비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이불이 주는 온기로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밤의 그 느낌이 잠에서 깬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비가 그치고 화창한 하늘이 아쉽기까지 하다. 조금만 더 오지 하는 마음에 가디건을 입고 외출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쯤 더웠다. 그래도 샷을 추가한 따뜻한 바닐라라떼가 먹고 싶다. 그래서 따뜻한 바닐라라떼를 사왔다. 이제 비 오는 날과 같은 환경을 만들면 된다. 사무실 에어컨을 켜고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그리고 비 오는 날에 듣던 노래를 재생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절절하지만 담백한 비 오는 날의 정취에 어울리는 노래는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이다. 전주의 단조로운 피아노 반주 아래 "언젠가 마주칠 거라는 생각은 했어"로 시작해서 기타 반주가 합쳐지고 하나씩 악기가 추가되는 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노래에 공감하며 함께 부르는 느낌이 난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 첫 연애를 23살이 넘어서 한 나에게 이 노래는 그저 로맨스소설과 같은 내용이었다. 첫사랑은 평생 잊지 못한다는 데 과연 잊혀질까 싶기도 했고, 사랑을 다른 사랑으로 잊으면 요즘 말로 '환승' 아닌가?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첫 연애를 끝나니 아주 조금 이해가 된다. 지난 첫 연애는 첫 사랑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연애하는 공상을 할 때나 로맨스 드라마를 볼 때 순간순간 전 남자친구가 떠오른다. 그래서 도리질을 치며 좋아하는 연예인을 그려본다. 하지만 실제 경험이 간접 경험보다 훨신 강하다는 것을 느끼고 아예 공상 혹은 드라마 보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생각한다. "외롭지는 않지만 얼른 다음 연애를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때가 떠오르는 게 가끔 짜증이 난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떠올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렇게 되면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잊혀지네'가 되는 것이 아닐까? 제일 좋은 것은 다음 연애에 매우 열정적으로 사랑을 해서 이별을 하고 또 사랑을 하는 것인데, 한명도 안나타는 지금 두명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렇게 사랑이 한명 나타나니, 두명 나타나니 하는 되지도않는 생각을 하면서 여유를 즐기는 나 처럼 에어컨을 켜고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를 들으며 바닐라라떼를 먹으면 마치 나도 그렇게 절절한 사랑을 하고 아파했고 그 것을 위로해주고 잊게 해준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비 오는 날의 춥지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아마 춥지만 따뜻한 비 오는 날의 온기처럼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는 절절하지만 담백한 모순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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