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오후 4시. 집 근처 카페에 와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중이다. 사람을 바쁘게 만드는 명언과 일화가 넘쳐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들에게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들에게 천금과도 같을 시간을 나는 그저 '때우고'있다니, 아픈 사람 하나 없는 카페에서 내 일상을 마음속으로 묘사하면서도 순간 민망해진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때우다가 즉각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순간 민망한, 딱 그 정도뿐이다. 우울함이 극으로 치달았을 때엔 내 시간을 소중하게 쓸 거라 자신하는 이들에게 넘겨주고 싶기까지 하다. 내가 무엇으로 내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 지 지금의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답 없는 상념을 뒤로하고 지금 나의 최대 고민은 "이대로 집에 갈 것인가, 아니면 저녁으로 브런치를 먹을 것인가"이다. 적당한 가격, 풍성한 양, 그리고 깔끔한 맛으로 나를 반하게 했던 브런치를 먹으러 바빈스커피 독산점을 지금 갈까 고민하고 있다.
세 번의 방문 만에 내 입을 사로잡은 바빈스커피 독산점은 첫 만남 때는 별로였다. 내 기억으로는 지금의 주인과는 다른 주인이 운영하던 때였고 카페 분위기가 어두웠다고 느꼈었다. 당시 브런치 모형이 지금과 같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어두운 분위기와 소파의 의자가 넓어 등을 기대기 뭔가 불편한 좌석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 번째. 한겨울 산책과 같은 걷기 운동을 하고 너무 추워 카페에 들어왔다. 운동을 하러 나왔기에 카드지갑만 달랑이었던 나는 재오픈 기념이라 아메리카노가 1,000원이라는 소리에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1,000원을 카드 결제해야 한다니. 당장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내게 친절하게 괜찮다며 카드 결제를 해주셔서 초콜릿도 같이 시켰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몸을 녹이고, 땀을 식히고 늦은 밤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되새기고자 몇 주 후 오후에 바빈스커피를 다시 찾았다. 엄마와 다퉈 안 좋은 기분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카페를 향했다. 평소 가던 맛 없지만 직원 눈치 볼 필요 없던 카페를 가기보다 조금의 색다름으로 기분을 바꾸고자 다른 카페로 향했다. 그곳이 바로 바빈스커피 독산점. 우울한 기분은 과소비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되었고 11,000원 상당의 브런치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온 브런치는 한 끼 식사로 충분을 넘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상큼하고 신선한 샐러드와 VIPS의 훈제 연어 부럽지 않은 연어와 양화 그리고 소스의 장단은 내 기분을 180도 바꿀 만큼 만족스러웠다. 그때부터 몇 번 바빈스커피 독산점을 찾게 됐다. 브런치를 좋아하는 친구를 끌고 간 것은 물론이고 동네 친구들에게 내 가게인 듯 자랑까지 했다. 친절한 사장님과 만족스러운 커피와 브런치 탓에 손님이 점점 많아지는 듯싶었다. 그래서 웹서핑을 하거나 공부를 하려고 할 때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게 죄송해 자주 찾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무기력한 기분을 반전시키고 싶을 때는 꼭 찾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이미 카페 안이고, 월급날이 일주일 남아 빈곤한 상태다. 그리고 블랙 퍼스트와 런치의 합성어인 브런치를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다(브런치를 처음 먹었던 날 시간이 지금과 비슷하긴 했지만). 햇빛이 화창한 오전 혹은 이른 오후에 먹어야 더 맛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먹으러 갈 것인가, 내일 브런치로 먹을 것인가. 고민이다.
고민의 결과는 "브런치로 브런치를 먹자". 고민의 다음 날인 30일 12시. 바빈스커피 독산점을 찾았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브런치를 먹었다. 행복하다. 어제와 같이 독서와 포스팅 작성으로 '시간을 때우는' 중이지만 내일을 위해 온전한 휴식을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라면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 내일은 무엇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청소도 하고, 하던 독서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바빈스커피 독산점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의 기분전환을 위해 이만 테이블을 비워주어야겠다. 내가 오늘 앉았던 이 자리에 곧 앉을 다음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라며 엉덩이를 뗀다.
작성일 2015. 8. 30. (?)
'나름대로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그널의 1994년, 응답하라 1994 (0) | 2016.03.03 |
---|---|
현시점에 모두가 참여해야할 위민넷 2월 캠페인 아동학대 금지! (0) | 2016.02.20 |
겨울은 두껍게 입고 가습기 제대로 틀고 수분크림 바르면 끝! (0) | 2015.11.13 |
정동진은 어렵지 않은 바다 (0) | 2015.11.12 |
리뷰글만 쓰다보니 지쳐서 바람피러 갔어요 (0) | 2015.10.04 |